예린이의 일기
초등학교 1학년, 오늘 다음 날
어제 잠들기 전, 나는 내가 쓴 일기를 다시 읽어 보았다. 글 속에 있는 예린이는 하루를 꽤 열심히 살고 있었다. 그래서인지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마음이 조금 단단해진 느낌이 들었다. 오늘은 어떤 하루가 될까, 조금은 기대가 되었다.
학교에 가는 길에 운동장 옆 화단을 보았다. 작은 꽃들이 어제보다 더 활짝 피어 있었다. 어제도 분명 있었을 텐데, 오늘에서야 눈에 들어왔다. 나는 그때 깨달았다. 바쁘게 지나가면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있고, 천천히 보면 보이는 것들이 있다는 걸.
오늘 첫 수업은 과학이었다. 주제는 ‘우리 몸의 변화’였다. 선생님은 우리가 자라면서 키도 크고, 생각도 달라지고, 몸도 점점 튼튼해진다고 말씀하셨다. 나는 조용히 내 손을 내려다보았다. 지금은 작지만, 언젠가는 커질 손. 이 손으로 나는 무엇을 하게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.
과학 시간에 선생님은 질문을 하나 하셨다. “사람의 몸에서 가장

바깥에 있는 건 무엇일까요?” 친구들은 머리카락, 옷, 손톱이라고 대답했다. 선생님은 웃으시며 ‘피부’라고 말씀하셨다. 피부는 우리 몸을 지켜 주는 첫 번째 방패라는 설명이 이어졌다. 그 말을 듣는 순간, 어제 보건 시간에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. 나는 괜히 마음속에서 작은 연결 고리가 생기는 느낌이 들었다.
쉬는 시간에 친구 하나가 넘어져 무릎을 살짝 다쳤다. 피가 나지는 않았지만 얼굴이 울 것처럼 찡그려졌다. 나는 보건실에 같이 가 주겠다고 말했다. 보건 선생님은 상처를 깨끗이 닦아 주며 “피부는 금방 회복하려고 열심히 일하고 있어”라고 말씀하셨다. 친구는 그 말을 듣고 조금 안심한 표정을 지었다. 나는 그 장면을 보며 이상하게 마음이 조용해졌다. 누군가의 아픔이 조금 나아지는 순간을 함께 본 느낌이었다.
국어 시간에는 동화를 읽었다. 주인공은 실패를 여러 번 겪지만 결국 포기하지 않는 아이였다. 책을 덮고 나서 나는 생각했다. ‘실패해도 괜찮다는 말은 그냥 위로가 아니라, 다시 해도 된다는 허락이구나.’ 공부를 하다 틀릴 때마다 속상해했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. 하지만 틀린 문제 덕분에 더 잘 알게 되는 것도 많았다.
수학 시간에는 어제보다 조금 어려운 문제가 나왔다. 처음에는 잘 모르겠어서 손이 멈췄다. 예전 같았으면 그냥 넘겼을지도 모른다.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. 문제를 다시 읽고, 숫자를 하나씩 적어 보았다. 시간이 조금 걸렸지만 결국 풀 수 있었다. 그때 느꼈다. 어려움은 나를 멈추게 하는 게 아니라, 생각하게 만든다는 걸.
하교 후 집에 돌아와 숙제를 하며 엄마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. 엄마는 조용히 듣다가 이렇게 말했다. “예린이는 사람을 잘 보는 아이인 것 같아.” 그 말이 마음에 오래 남았다. 사람을 잘 본다는 건, 겉모습만 보는 게 아니라 마음과 상황을 함께 본다는 뜻일 것이다.
저녁을 먹고 나서 책을 한 권 더 읽었다. 이번에는 사람의 몸에 대한 그림책이었다. 피부 아래에는 혈관이 있고, 그 안으로 피가 흐른다는 내용이 나왔다. 나는 책을 덮고 상상해 보았다. 몸 안에서 열심히 일하는 작은 세계를. 보이지 않지만 꼭 필요한 것들이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.
잠자리에 들기 전, 나는 오늘 하루를 다시 떠올렸다. 꽃을 본 아침, 과학 시간의 질문, 친구의 무릎, 수학 문제를 풀던 순간까지. 모두 나에게 작은 배움이 되었다. 크게 특별한 일은 없었지만, 그래서 더 소중한 하루였다.
나는 아직 초등학생이다. 하지만 이렇게 하루하루를 쌓다 보면 중학생이 되고, 고등학생이 되고, 대학생이 될 것이다. 그 과정에서 나는 더 많은 공부를 하고,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, 더 깊이 생각하게 될 것이다. 그리고 언젠가는 누군가의 피부를 살피며 말할 것이다. “지금 상태는 이렇지만, 좋아질 수 있어요.”
오늘의 교훈은 이것이다. 잘 자란다는 건, 빨리 커지는 게 아니라 매일 조금씩 배우는 것이다. 그리고 그 배움은 교실 안에서만 있는 게 아니라,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도 자란다. 예린이는 오늘도 그렇게 한 걸음 자랐다.